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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사실주의 - 세기말예술의 미의 추구와 특성

새로운 미의 추구

유럽의 세기말 예술은 프랑스에서는 '아르 누보'(새로운 예술), 영국에서는 '모던 스타일'(근대 양식), 독일에서는 '유겐트 슈틸'(청춘 양식)로 불리며 모두 새로운 미의 창생을 나타내는 다채로운 움직임으로 세인의 큰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이 예술공예운동은 나라마다, 지역에 따라 다른 명칭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조형미술 뿐만 아니라 건축, 공예디자인, 포스터, 삽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쌍방향적인 교류·영향관계를 볼 수 있었던 점과 화려한 곡선무늬를 주체로 한 새로운 미학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한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윌리엄 모리스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아트 앤드 크라프츠 운동, 잡지 르뷔 브랑슈 주위에 모인 로트렉과 나비파 젊은이 등 프랑스의 예술가들, 벨기에의 전위예술그룹 자유미학에 모인 사람들, 독일의 잡지 유겐트나 빵을 무대로 활약한 작가들이 저마다의 개성적 특색을 유지하면서도 이 광범위한 세기말 예술운동에 참여했다.로트렉이 유채를 계속 그린 채 과감하게 포스터에 도전한 것도 이 분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새로움을 요구한 것은 그 운동의 명칭 자체에서도 나타나지만 뮌헨, 빈, 베를린에서 잇따라 결성을 본 분리파 또한 이른바 과거로부터의 분리를 주창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 경향을 갖고 있다.그 중에서도 1897년에 클림트가 결성한 빈 분리파는, 한편으로 오스카·코코슈카나 에곤·실레 등 한층 표현주의적인 화가를 낳은 한편으로, 후에 「건축은 필요에만 따른다」라고 주창한 오토·바그너, 또 「장식은 범죄다」라며 심플한 조형성만을 요구한 아돌프·로스와 같은 건축가의 성립도 재촉했다.

문학 분야에서는 상징주의(삼볼리즘)가 일어나며 평생 시의 가능성을 찾아 헤매던 스테판 마랄메, 그 파멸적 삶과 함께 가을날의 비올론의… 등의 역사로 알려진 폴 베를렌, 20세기 시인에게 특히 큰 영향을 끼친 아르튀르 람보 등 진실로 위대한 시인들이 속속 나타났다.독일에서도 신은 죽었다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니체가 나타났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영겁회귀와 초인에의 의사라는 독자적인 철학을 확립했다.




세기말 두 가지 특성

 

그런데 세기말이란 단순히 연대나 시대구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예를 들어 19세기 후반의 회화에는 한편으로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의 흐름이 있으며 그와 거의 병행하여 반리얼리즘의 상징주의 회화가 있었다.동시에 아르누보로 불리는 신예술운동도 있었고, 전통적인 아카데미파 그림도 건재했다.그러나, 미술이나 문학의 영역에서는 단지 19 세기말이라고 하는 한정된 시대 구분을 가리킨다기보다는, 그 시대 특유의 두드러진 개성·경향을 가리키고 있다.클로드 모네나 르누아르가 '세기말'로 분류될 리 없다.

그러한 '세기말' 예술의 특성 중 하나가 양식상징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주제에서의 죽음이나 에로스에 대한 집착 등 특수성이며, 또한 사회통념에서 벗어난 '퇴폐적' 주제나 모티프를 선호하는 경향이었다.그리고 예술가들은 이 두 가지 특성을 전개하기 위한 소재를 신화, 전설, 역사, 성경, 문학, 가극 등에서 구했다.그러나 이것은 아카데미파의 역사화와는 구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세기말의 작가들은 설화 자체가 의미하는 바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재해석을 하면서 상징적 우의적으로 제시한 것이다.그러므로 그 예술은 설화를 말해 줄 뿐만 아니라, 격렬한 사회 변화 속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말해 준다.모두에 내건 살로메나 스핑크스, 오르페우스 등 「이형」의 제재가, 의외로 사랑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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